스포츠 저널리즘의 시작, 일간스포츠 창간
2010년 초반 스포츠신문 시장은 일간스포츠(한국일보 자매지, 요즘은 중앙일보 계열), 스포츠서울, 스포츠조선 조선일보 자매지이 삼분하고 있었다. 스포츠 신문은 가정 구독분보다는 가판대에서 팔리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서 지하철에서 스포츠 신문을 펼쳐 읽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그렇지만 무가지가 나오면서 스포츠 신문의 인기는 한풀 꺾였다. 사람들은 700원을 주고 스포츠 신문을 사보기보다는 널려 있는 무가지를 집어 들고 지하철을 탄다.
무가지가 스포츠 신문 시장을 잠식하고 있음에도 2010년 초반에는 발행되는 스포츠 신문의 종류는 과거보다 훨씬 많아졌다. 경향신문에서도 스포츠 경향을 만들고, 동아일보는 스포츠동아를 내고 있다. 세계일보도 스포츠월드를 만들었었다. 장사가 잘 돼서 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에서 언론사가 파산하는 경우는 흔치 않는데, 스포츠 신문 굿데이가 2004년에 파산했을 정도로 스포츠 신문 시장의 상황은 좋지 못하다. 아마도 발행되는 스포츠 신문들 중 상당수는 종합지의 구독 부수를 늘리기 위한 마케팅 목적으로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스포츠 신문도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스포츠 저널은 1961년에 간행된 ‘주간 연예스포츠’였지만, 발행된 지 얼마안가 폐간됐다. 최초의 스포츠 언론이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별다른 대중적 파급력은 없었던 셈이다. 의미 있는 최초의 스포츠 전문지는 1969년에 창간된 일간스포츠였다.
일간스포츠는 한국 스포츠 미디어의 선구자였다. 창간 직후에도 스포츠 소식이 신문의 전면에 나오고, 연예 관련 뉴스가 뒤쪽에 나오는 요즘의 스포츠 신문과 비슷한 구성이었다. 요즘도 그렇지만 스포츠 신문의 편집은 종합일간지보다 훨씬 파격적이다. 톱뉴스가 1면에 커다란 사진과 함께 실리는 파격적 편집은 스포츠팬들의 눈길을 끌었다. 차범근, 홍수환, 최동원과 같은 대스타들이 일간스포츠의 1면을 장식했다.
그당시에는 일간스포츠를 사보던 재미가 쏠쏠했다. 막 스포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꼬마 팬은 엄마에게 받은 100원 짜리 동전을 들고 동네 신문 가판대로 달려가 일간스포츠를 샀다. 70년대 후반, 신문 한 부에 80원하던 시절이었다. 요즘의 프로야구 경기 기록과 같은 자세한 박스 스코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경기 기록에 대한 세세한 내용을 볼 수 있어 너무나 좋았다. 또한 스포츠 신문이 좀 옐로우 페이퍼의 성격도 있기 때문에, 당시에도 수영복 입은 여자들 사진 같은 것이 자주 실리곤 했다. 주간지 선데이서울을 사볼 만한 용기와 돈이 없었던 꼬마들에게, 일간스포츠는 살짝 일탈의 즐거움을 일깨워주는 고마운 매체이기도 했다.
스포츠 신문의 진정한 전성시대는 80~90년대였다. 스포츠는 유희이다.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돼야 유희로서의 스포츠가 일상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80년대는 한국 경제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던 성장의 시대였다. 1982년에 프로야구가 시작됐고, 1983년에는 프로축구와 프로씨름이 시작됐다. 농구대잔치와 배구 백구의 대제전 등도 사실상 세미프로리그 성격의 겨울 스포츠로 자리를 잡았다. 또한 한국 축구가 당당히 월드컵 진출을 이뤄내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한국의 엘리트 스포츠의 수준이 한 단계 높아졌던 시기도 80년대였다. 스포츠 신문에서 다룰 수 있는 콘텐츠는 차고 넘쳤다.
시장이 커지면서 일간스포츠가 외로이 지키던 스포츠 시장에도 새로운 참가자가 생겼다. 1985년에 서울신문에서 스포츠서울을 창간했다. 1990년에는 조선일보에서 스포츠조선을 내놓기 시작했다. 지하철 가판대에서는 스포츠 신문을 산처럼 쌓아 놓고 팔았고, 종합일간지와 달리 1면이 컬러로 장식된 스포츠 신문들은 불티나게 팔렸다. 시간을 때우기 위한 읽을거리로서 스포츠 신문을 따라올 적수는 없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의 지하철 건설이 가속화됐다는 점도 스포츠 신문의 인기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아무래도 버스보다는 지하철이 인쇄물을 읽기에는 편하기 때문이다. 스포츠 신문은 오가는 길의 킬링타임용 읽을 거리였기 때문에 지하철 역 쓰레기통에는 버려진 스포츠 신문이 수북이 쌓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스포츠 신문이 단지 스포츠 소식만을 전한 것은 아니다. 어느 나라나 그렇지만 스포츠 신문은 대중문화 전문지라고 보는 것이 옳다. 신문의 전면은 스포츠 소식으로 채워지지만, 뒷부분은 시시콜콜한 연예 기사들로 채워진다. 특히 연재만화나 소설은 스포츠 신문의 또 다른 매력이었다.
일찍이 일간스포츠는 70년대부터 고 고우영 화백의 만화 <일지매>와 <삼국지>를 연재해 인기를 끌었다. 후발주자 스포츠서울의 야심작은 이규형의 소설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였다. <청춘스케치>는 당대의 가장 트렌디한 소설이었다. 빠른 전개와 감각적인 표현으로 2010년대 ‘나꼼수’ 못지않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후발 주자 스포츠서울이 시장에서 빨리 자리를 빨리 잡을 수 있었던 데는 청춘 스케치의 인기가 큰 기여를 했다. 일간스포츠의 반격은 80년대 후반에 연재됐던 강철수의 <발바리의 추억>으로 시작됐다. 1990년에 창간된 스포츠조선은 80년대 최고의 만화가 이현세의 작품으로 맞불을 놓았다. 이현세의 <남벌>은 스포츠조선을 통해 소개됐다. 허영만의 <타짜> 역시 스포츠조선에서 소개됐다. 이들 만화는 모두 영화로 제작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어느 나라에서나 스포츠 신문이 고급문화를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스포츠 신문은 대체로 가볍고 선정적이다. 이성적이라기보다는 감성적이고, 분석적이라기보다는 자극적인 기사들이 주로 지면을 채운다. 때로는 낯 뜨거운 광고들이 실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사는게 그렇지 않은가, 타인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기억이 왜 없을까? 고상함만으로 인생이 채워질 수는 없다. 피곤한 출퇴근길에 몇 개의 동전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그 기억도 우리 삶의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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